이 나무는 현재 우리나라에 생존하고 있는 은행나무들 중에서 가장 크고 우람하며 오래 된 것으로 용문사 대웅전 앞에 위치하고 있다. 은행나무는 나이가 약 1,100여 년으로 추정되며 높이 60여미터에 줄기의 가슴높이 둘레가 12.3m를 넘어 동양에서 는 가장 큰 은행나무이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신라의 마지막왕인 경순왕(敬順王)이 그의 스승인 대경 대사를 찾아와서 심은것이라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세자 마의태자(麻衣太子) 가 나라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던 도중에 심은 것이라고도 하고, 신라의 고승(高僧)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뿌리가 내려 이처럼 성장한 것이라고도 한다.

많은 전란으로 사찰은 여러번 피해를 입었지만 특히 정미의병이 일어났을 때 일본군이의병의 본거지라하여 사찰을 불태워 버렸으나 이 은행나무만은 불타지 않고 살아 남았던 나무라하여 천왕목(天王木) 이라고도 불렀고 조선 세종(世宗) 때에는 정3품(正三品)의 벼슬인 당상직첩(當上職牒)을 하사(下賜) 받기도한 명목(名木)이다.

입 장 료 개인 단체(30명)
어른 2,000원 1,800원
청소년, 군인 1,400원 1,200원
어린이 1,000원 8,00원

주 차 장 : 1,000여대 수용

주차요금 : 소형차 2,000원(12인승 이하), 대형차 4,000원(13인승 이상)

휴 무 일 : 없음

주요시설 : 용문사은행나무, 용각암, 마당바위, 장군약수, 자연계곡, 용문사상원사, 정지국사 부도 및비, 운필암, 용문산지구전적비

편의시설 : 야영장, 족구장, 급수대, 농구장, 화장실, 야외공연장 등









용문산 동쪽 자락에 솟은 중원산(799.8m) 동쪽 기슭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깊고 맑은 골짜기를 중원계곡이라고 한다. 중원계곡은 곳곳에 기암괴석과 옥류를 빚어내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중원폭포가 대표적인 명소다.

숲속에 솟은중원산의 기암괴석중원폭포 하류의 중원계곡 중원폭포는 높이 10m가 채 안되지만 병풍을 두른 듯한 주위의 기암절벽과 수줍은 처녀의 댕기처럼 곱상한 자태의 물줄기가 눈길을 끌고, 폭포 아래의 소(沼)도 제법 넓고 깊다.

폭포 주변에는 휴식에 알맞은 암반 및 숲속 공간이 펼쳐진다. 중원계곡의 진수를 맛보려면 중원폭포 상류로 오르는 것이 좋다. 사람의 발길이 비교적 뜸한 중원계곡 상류는 다채로운 비경을 보여주다가 30분 남짓한 지점에서 또 하나의 멋진 폭포를 빚어낸다.

이름하여 치마폭포. 한마디로 그 명칭대로 절경이다.

현지교통 용문시외버스터미널에서 중원리행 시내버스 이용 (1일 5회 / 20분 소요)
도로안내 1) 중부고속도로 경안나들목 → 광동교 → 88번 지방도 → 양평대교 → 6번 국도 → 용문사 입구 주차장 → 중원산
2) 88올림픽도로 → 팔당대교 → 6번 국도 → 양평 → 용문사 입구 주차장 → 중원산









이 나무는 현재 우리나라에 생존하고 있는 은행나무들 중에서 가장 크고 우람하며 오래 된 것으로 용문사 대웅전 앞에 위치하고 있다. 은행나무는 나이가 약 1,100여 년으로 추정되며 높이 60여미터에 줄기의 가슴높이 둘레가 12.3m를 넘어 동양에서 는 가장 큰 은행나무이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신라의 마지막왕인 경순왕(敬順王)이 그의 스승인 대경 대사를 찾아와서 심은것이라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세자 마의태자(麻衣太子) 가 나라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던 도중에 심은 것이라고도 하고, 신라의 고승(高僧)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뿌리가 내려 이처럼 성장한 것이라고도 한다.

많은 전란으로 사찰은 여러번 피해를 입었지만 특히 정미의병이 일어났을 때 일본군이의병의 본거지라하여 사찰을 불태워 버렸으나 이 은행나무만은 불타지 않고 살아 남았던 나무라하여 천왕목(天王木) 이라고도 불렀고 조선 세종(世宗) 때에는 정3품(正三品)의 벼슬인 당상직첩(當上職牒)을 하사(下賜) 받기도한 명목(名木)이다.








 
이 나무는 현재 우리나라에 생존하고 있는 은행나무들 중에서 가장 크고 우람하며 오래 된 것으로 용문사 대웅전 앞에 위치하고 있다. 은행나무는 나이가 약 1,100여 년으로 추정되며 높이 60여미터에 줄기의 가슴높이 둘레가 12.3m를 넘어 동양에서 는 가장 큰 은행나무이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신라의 마지막왕인 경순왕(敬順王)이 그의 스승인 대경 대사를 찾아와서 심은것이라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세자 마의태자(麻衣太子) 가 나라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던 도중에 심은 것이라고도 하고, 신라의 고승(高僧)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뿌리가 내려 이처럼 성장한 것이라고도 한다.

많은 전란으로 사찰은 여러번 피해를 입었지만 특히 정미의병이 일어났을 때 일본군이의병의 본거지라하여 사찰을 불태워 버렸으나 이 은행나무만은 불타지 않고 살아 남았던 나무라하여 천왕목(天王木) 이라고도 불렀고 조선 세종(世宗) 때에는 정3품(正三品)의 벼슬인 당상직첩(當上職牒)을 하사(下賜) 받기도한 명목(名木)이다.